메모장

2024 텍스트 아카이브

-옌 2024. 3. 6. 11:46

 

 

 

이미지의 배반 (La trahison des images) -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창의적인 반항아들은 흔히 자신이 권력자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점거 운동Occupy'의 시위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살아감으로써 자신들이 실은 자본주의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야말로 자본주의의 생명줄이니까. 동시대 미술은 자본주의를 위한 연구개발 부서와 같다. 칼 마르크스는 진보 혹은 참신함에 대한 이 욕구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본성"이라고 표현했다. 
   예술가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완벽한 모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선 이들은 예술 작품을 사들이면서 자신들의 취향이 사회에서 폭넓은 트렌드를 형성하여 그 투자에서 수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건 다른 모든 투자가들과 똑같다. 그들은 전위에 서서 미래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작품의 후세에 판돈을 건다. 그리고 고정된 질의 척도는 없으므로 그 미래는 대단히 유동적이다. 여러 면에서 볼 때 그들은 단지 예술에 투자하는 것만으로 예술에서 수익이 나올 가능성을 더 키우는 것이다.  

그레이슨 페리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p.125-126 32,50
   세계에 대한 체험은 계획적인 공부거리가 될 수 없다. 세계 안에 나 있는 심연들 때문에, 우리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의 모습은 없고 파편들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세계의 탐색자를 재촉하기보다 여기서 그냥 쉬라고 말한다. 보라, 세상은 깨어졌다. 그 파편들이 아름다우니, 이제 조개껍데기들이 빛을 반사해 우주로 돌려보내는 아침이면 하나씩 주워보자. 그리고 조각들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보자. 하나의 세계가 당신의 손안에서 꼬리가 아름다운 별처럼 태어나 바람을 타고 움직이며 기분 좋은 궤도를 만들 때까지, 그 별이 궤도를 다 돌면 하루가 지나는 이 세계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희망하는 '읽기'이다. 

서동욱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p.11
I 'gin to be aweary of the sun.
난 태양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And wish th' estate o' th' world were now undone.
그리고 우주가 이제 무너졌으면 좋겠다. 

셰익스피어 <맥베스> 中
 입으로 소리를 형성하는 행위에는 쾌감이 있다. 이것은 너무나도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것이어서, 인간들은 역사에 걸쳐 그런 행위를 신성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해왔다.
 피타고라스파의 신비주의자들은 모음이 천구의 음악을 나타낸다고 믿었고, 그것들로부터 힘을 끌어내기 위해 영창을 했다. 
 오순절파 기독교인들은 방언을 할 때 자기들이 천국의 천사들의 언어로 말한다고 믿는다. 
 힌두교의 브라만들은 만트라를 암송함으로써, 현실의 구성 요소들을 강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오로지 발성 학습을 하는 종만이 신화에서도 소리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앵무새들 역시 이 사실에 공감할 수 있다. 

테드 창 <숨> p.341
   기성세대가 원하는 건 현상유지가 아니에요. 세상이 자신에게 익숙한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죠. 좀 더 거칠고 야만적이었던 시절로요.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 두면 변해요. 흘러가고 변화하죠. 난 세상을 그대로 두기를 원해요.
   모든 것이 흘러가기를.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기를,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니기를, 오늘 살던 집을 잃지 않기를, 내가 보던 그 강이 그대로 흐르고 그 산야가 계속 푸르기를.

<제1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고요한 시대 p.96
   자본주의는 내부의 모순을 다른 곳으로 전가하여 보이지 않게 한다. 그 전가로 인해 모순이 더욱 심각해지는 참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자본이 시도하는 전가는 최종적으로 파탄에 이른다. 

사이토 고헤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p.41
   수칭은 톈홍을 안아 주고 싶었지만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는 분명히 품에 꼭 안아 주었던 귀여운 동생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순간에는 그를 향해 두 팔을 내밀 수가 없었다. 어쩌면 동생을 안았다가는 어떤 힘으로 굳게 지키고 있던 무언가가 두 사람의 몸에 눌려 완전히 깨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천쓰홍 <귀신들의 땅> p.260
   인간들은 부와 결합된 고귀하고 순수한 혈통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도 배웠어.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사람들은 존경할 거야. 하지만 둘 중 하나도 없으면,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택된 소수를 위해 자기 힘을 낭비해야 하는 부랑자나 노예로 간주되었지.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내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나를 창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르지. 하지만 내게 돈이나 친구, 재산이 전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지. 게다가 내 외모는 끔찍하게 추악하고 혐오스럽지. 심지어 내게는 사람의 본성도 없어. 나는 사람보다 더 민첩하고, 더 보잘것없는 음식을 먹고 살 수도 있어. 또 심한 더위나 추위를 견딜 수 있지. 내 키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크지. 주위를 둘러보니, 나 같은 존재는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괴물이란 말인가? 모든 인간이 도망치고, 모든 인간이 부인하는 지상의 오점이란 말인가?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p.140
   나는 정치적 예술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모두 예술가이고, 그 안에서 예술적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이 세계에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 한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이 세계의 개념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정치적이다. 정치적이지 않거나, 비판적이지 않거나, 세계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자크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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